공공성이라는 가치 개념에는 규범과 원리와 이를 기반으로 한 영향력이 담겨있는 것 같다. 공공성 개념은 사람들의 모든 활동을 설명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프레임같다. 연구자가 어떠한 관점에서, 어떠한 흐름 속에서 무엇을 설명해내려고 하는지에 따라 공공성 프레임은 얼마든지 유연하게 변용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길을 잃기가 너무 쉽다. 나 같이 초보연구자에게는 더더욱 멘붕의 순간들이 자주 찾아온다.
공공성에 대한 여러 관점을 훑어보고, 여러 흐름들을 살펴보다보면 끝이 없다. 뭐 하나를 보고 나면, 바로 이어서 봐야할 것들이 짜란 하고 나타난다. 갈 길이 아주 먼데, 독해 능력은 미천하기 그지 없다. 불안한 마음에, 우선 필요해보이는 것을 보고, 거기서 봐야할 것 같은 텍스트를 연결해서 보는 일종의 귀납적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인 시대변화 흐름 속에서 이 텍스트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종종 잊는다. 눈에 불을 키고 내가 찾는 그 개념들만을 좇는다. 물론 그 과정에서 텍스트들이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지만 같은 의미라는 것을 깨닫고 그걸 꿰매서 연결하는 재미는 있다. 그럴 때는 내 무릎을 탁치며 위대한 지적 유산들에 존경을 표한다. 놀랍고 신기하다. 어쩔 때는 이제야 내 주변 이웃들이 왜 지금 이렇게 삶이 고통스러웠던 것인지 비로소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문제는 그런 식의 귀납적 혹은 미시적 연구방법이 자기확증적 편향의 여지를 준다는 점이다. ㅇㅇ이는 원 텍스트가 가진 본래의 의미를 곡해해서 완전히 다르게 내 식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 같다고 조언을 해줬다. 같은 내용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더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더더욱 잘 모르는 학문분야까지 넓게 건들이고 있어서 텍스트를 거시적인 흐름 속에서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 덜컥 겁이 났다. 그 텍스트들과 내가 수집한 데이터 분석내용을 연결시켜서 내 주장을 강화하고 싶은 것인데, 되려 그 텍스트들에 대한 이해가 짧은 것이 독이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됐다. 공부를 제대로 다시 해야할 것 같다.
신자유주의에서 탈피하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 공공성 프레임을 활용하는 연구들이 보여주는 흐름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거기서 정치사회 학문분야 연구들 중에서도 비영리기관과 시민운동에 대한 연구가 자꾸 튀어나온다. 내가 데이터에서 발견한 공공성의 내용들이 비영리기관의 내용에서 자꾸 공통된 부분이 나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비영리기관의 관계는 무엇일까? 신자유주의와 제3섹터 시민운동이 활발해진 흐름의 연결고리에 대해, 국가적, 시대적인 환경 맥락 속에서 생각해보려니 갑자기 연구가 거대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또 여기에 꽂히려하나, 다급해진 마음에 한 발자국 일단 후퇴했다.
다음은 한국 도서관의 공공성이니까, 우선 한국의 도서관 태동 역사 흐름을 살펴봐야겠다 싶었다. 작년에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 분법화 과정을 정책네트워크 모형으로 분석하는 논고를 썼었는데, 그 과정에서 마을문고(민간/독서출판계) vs. 공공도서관(정부/도서관계)의 분리된 2트랙 관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오늘 관련 논문들을 다시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은 마을문고의 자생적인 출현과 그 활성화 노력 과정이 내가 수집한 데이터에서 발견한 공공성의 특성과 상당부분 겹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도서관은 정부가 아닌 민간 주도로, 비영리기관이자 제3섹터가 행위주체가 되어야 공공성이 더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일까? 정부 주도의 도서관 설립, 법제도 개정과 정책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도서관계, 민간과 정부/도서관계의 분리된 연계구조, 정부 내에서도 분열된 관리구조, 시민과 괴리된 방식의 도서관 운영, 도서관의 정부조직화 등등이 공공성 구현을 해치고 있었다. 반면,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진 마을문고 운동은 도서관=책 이라는 인식을 형성하는 도서관의 본질적인 역할(공공성)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적 활동의 요소들을 담고 있었다. 도서관 “운동”이라고 표현된 부분으로 인해 가치 지향적인 운동을 의미하는 줄 알고 읽지 않았던 부분이다. 다시 읽어보니 초기 민간 창설자는 도서관에 “경영 원리와 기법”을 적용해야한다고 말하며 공공성을 구현해나가고자 했다. 결국 자원 확보 문제로 인해 정부에 귀속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어디까지, 어떠한 흐름으로, 압축적으로 도서관 공공성을 설명해낼 수 있을까? 순간 순간 방대한 파도가 날 덮쳐오는 기분이 든다. 나는 이걸 완성할 수 있을까? 공공성 프레임은 이토록 엄청난 것이었는데, 얕은 내가 까불어대다가 납작하게 눌려서 피 한 방울 못 내고 사라져버리면 어떡하지? 우선 함부로 꽂히지 말고, 교수님의 피드백을 기다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