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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공성

작은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 도서관의 공공성

검은콩콩 2020. 8. 25. 22:29

가장 좋아하는 영화, 타인의 삶과 Her(그녀)를 다시 보았다. 며칠에 걸쳐 두 영화를 다시 보니 내가 어떠한 정서를 좋아하는지 알겠다. 일상 속,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한 개개인을 그린 영화. 반복적인 일상에서 사람을 만나고, 음악을 들으면서 채워지는 마음 속 텅빈 공간들. 점차 허망한 가치들을 좇는 이 시대에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들. 그래서 이 영화들을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나나보다. 

 

설거지하면서 잠시 볼 예능을 찾아서 켜놨다가, 뻔한 그 말들의 주고받음이 허무하고 불편해서 꺼버렸다. 상대를 치켜세워주고, 평가하고, 으스대는 모습들이 보기가 싫었다. 그런 모습들을 부추기는 맞장구가 역겹고, 그걸 위해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것을 보는 불편함을 참아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비긴어게인 코리아를 켰다. 

 

비긴어게인 코리아 1화는 코로나19로 텅빈 공항 로비에서 하는 버스킹으로 시작됐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이소라 언니와 수현양이 나와서 기대가 됐다. 한 공항 직원은 인터뷰에서 이곳이 코로나19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최전방이라고 말했다. 너무나도 바쁜 시기에, 가족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자기에게 메시지를 많이 보냈는데, 그만 메시지를 보내라고 했다 한다. 아마도, "나는 괜찮다,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조차 힘이 드는 그런 상태였을 것이다. 그 말을 한 그 직원은 올라오는 울음을 집어 삼키다가 끝내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어가지 못 했다.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놀라던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래서 나도 같이 울었다. 켜켜이 쌓여있는 울음을 내리누르며, 핸드폰 화면 속 그녀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모습이, 지금 일상을 살아가는 개개인이 마음 속 깊이 묻어둔 빈 공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공간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채울 수 있도록 작은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공공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러다, 하림이 나왔다. 공항 로비를 헨리와 크러쉬와 함께 셋이서 걷던 그는 음악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자세한 워딩은 생각나지 않지만, 음악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무언가를 할 계기를 마련해주는 거라 했다. 그걸 건들여서 깨트려주기만 할 뿐이지만, 그걸 건드려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귀한 일이라는 의미가 담긴 말을 했다. 나는 하림의 음악을 그저 그렇게만 들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들은 그의 음악 소리는 정말 좋았다.

 

오늘 오전에 알라딘에서 주문한 클래식 관련 책 4권이 당일 배송으로 집으로 왔다(되도록 당일 배송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 책은 클래식이 일반 대중들이 쉽게 들을 수 없도록 그 장벽을 일부러 높게 만든, 어렵고 집중해서 이해해야 겨우 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음악이라는 것. 귀족들이 자신이 가진 부와 품격을 과시하기 위해 이용한 음악이라는 것을 정성들여 설명해놓았다. 알고는 있는 내용이었지만 지금 생각들이랑 연결이 되면서, 대중음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대중음악은 공공음악이라고 하지 않는데, 대중과 공공은 같은 의미인 것일까?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접하고 누릴 수 있도록 클래식이든 어려운 지식이든 쉽고 재밌게 풀어놓으려는 사람들의 노력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어려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건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다.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하고,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게끔 재가공하여 창조해내는 사람들은 공공성을 실현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나는 사람들이 각자의 일상에서 개별적으로 느끼는 감정과 깨달음을 음악에 담아내보고 싶다. 음악에 담긴 소리와 가사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각기 가진 경험들을 꺼내서 감정을 연결한다. 그러면서 점차 서로가 연결되어 함께 말랑말랑해지고 축축해지는 그런 순간들이 좋다. 음악은 서로 생각이 다르든, 언어가 다르든 상관없이 마음을 전할 수 있으니까 참 좋은 것 같다. 

 

집에 있으니까 비긴어게인도 보고,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잠도 자고 이러길래 결국 연구실에 왔다. 요새 계속 뭔가 빠릿빠릿 머리도 안 돌아가고 쳐져있기만 하고, 공부하는 게 재미있기보다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던 터였는데, 오늘은 뭔가 되게 잘 된다. 그러다가 내가 너무 또 내 연구에만 빠져있는 기분이 들어서(여태 놀아놓고) 웹 포털사이트 메인에 떠있는 기사 목록을 쭉 살펴봤다. 내 이목을 끄는 기사 제목은 "색연필 쥐면 고된 농사 피곤 풀리고 정신도 총총해지죠”. 해남에서 농부인 김순복씨 이야기였다. 낮엔 농사 일을 하고, 저녁엔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그녀가 일에 매몰되지 않고, 다시 지적 창출의 세계, 그러니까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경험을 가지게 된 건, 그녀의 딸이 그녀에게 색연필을 쥐어주면서부터다.

 

단조로운 일상에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2015년 2월 생일에 셋째딸 신애가 “엄마는 그림 그리는 할머니 되는 게 소원이었잖아”라며 선물을 내밀었다. 72색 색연필과 스케치북이었다. - 기사 발췌 -

 

일상 속에 있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게 기회를 만나게 하는 것. 영화 타인의 삶과 Her(그녀)의 주인공의 일상에 작은 돌멩이를 던져 잔잔한 공명을 일으키는 것. 텅빈 마음 속 구멍들을 채워나갈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것이 공공성이고, 그게 도서관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작은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우리 주변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의미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몇 달 전, 행주산성 근처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시골 마을 골목길을 차로 지나게 되었다. 우연히 오지 않고서는 그 마을을 올 일이 없을 듯한 외딴 곳이었다. 그 골목길을 유유히 느릿느릿 걸어가는 허리가 꼬부라진 어떤 할머니를 차 안에서 봤다. 저 할머니는 평생 이곳이 전부인 세계 안에서 살았을지 몰랐다. 그게 불행하다는 게 아니라, 그 할머니가 자신의 세계를 더 넓혀 진정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만나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할머니가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면서 환히 웃고 기뻐하는 모습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경험들이 할머니의 일생의 소중한 추억으로, 할머니의 마음 속에, 이 세상에, 차곡차곡 쌓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번 달에는 홍대 경의선 숲길 근처 작은 도로에 있는 주차지정구역(공영주차장)에 차를 댔다. 볼 일을 보고 주차비 정산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 날은 무덥고 습한 날이었는데,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마포구'라는 글씨가 적힌 노란색 조끼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어떤 50대 중년 남자 분이 자전거를 타고 내게 왔다. 그 분은 정산할 곳이 많아 늦었다며 미안해하며 급히 주차비를 정산해줬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마음이 울렁였다. 울분이 올라왔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분들이 존중받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 행복은 돈만으로는 사서 드릴 수 없다. 그 분들을 행복하게 하려면, 그 분들이 애써 힘들이지 않아도, 우연히, 더 많은, 작은 계기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작은 계기를 마련하고 우연히 접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궁극의 공공성이 아닐까 싶다.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의 마음 속 구멍들이 채워지기를 바란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공공성을 연구해나가고 싶다.

도서관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주체니까.